늙으니 좋은 것들 - 배 안에 갇힌 8일 간의 평온 같은 것
나도 죽기 싫고, 늙으면 죽으니까 늙기도 싫다. 그러나 전능자께서 “2.8 청춘으로 되돌려 줄까?” 라고 물으신다면 언뜻 “예!”하고 대답할 것 같지 않다. 그동안 경험한 것, 성취한 것, 즐겼던 것이 다 헌신짝 같지는 않았고, 사랑하는 가족과 그동안 사귀었던 멋지고 좋은 사람들은 행복의 샘이었다. 거기다가 이제까지 살았던 것보다 더 아프고 슬플 수도 있는 삶을 다시 살 용기도 없고, 지금 누리는 늙음의 특권들을 포기하기도 싫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피타고라스는 삶을 축제에 비유했다. 어떤 사람은 돈 벌러 오고 어떤 사람은 재주 자랑하러 오지만 가장 뛰어난 사람은 구경하러 온다고 했다. 그 구경꾼이 바로 철학자인데, 돈이나 인기 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거리를 두고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이다. 그 “구경꾼(theates)”이란 그리스 말에서 영어의 “이론”(theory)이란 단어가 유래했다 한다. 나는 이론적인 것으로 먹고사는 철학을 전공했지만 젊었을 때는 제대로 된 구경꾼이 아니었다. 성취, 인기, 명예 등에 초연하지 못했고 그렇지 못한 것에 대해서 자책하고 고민했다. “세상 사람들이 즐겁게 오고 가는 것은 모두 이익 때문이고, 세상 사람들이 어지럽게 오고 가는 것도 모두 이익 때문이다”(天下熙熙 皆爲利來, 天下壞壞 皆爲利往-사마천 司馬遷). 나도 피타고라스나 사마천이 조롱한 세상 사람 가운데 하나였고 항상 어지럽게 분주했다.
그런데 90세를 바라보게 되자 이젠 원하든 않든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오랜 수양으로 성숙해진 게 아니라 나를 바쁘게 했던 그 어느 것도 이젠 할 수 없게 되고, 얻으려 했던 것들도 얻지 못할 뿐 아니라 얻으려 했던 것들도 별것 아니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1965년 미국에서 유럽으로 갈 때 여객선을 탔는데 배 밖에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는 것이 갑갑하기는커녕 그 8일간에 그 어느 때보다 더 큰 평온을 즐겼던 것이 기억난다. 나는 지금 그와 비슷한 평온을 누린다.
우선 책임질 일이 적어서 좋다. 한창때는 대학 총장도 해 보고 한꺼번에 스무 개 단체의 이사장으로 뛰기도 했다. 김원숙 화가는 허리가 90도로 꺾인 한 남자가 세 개의 봉우리를 가진 산을 등에 지고 가는 그림을 하나 그려 주면서 그게 바로 내 모습이라고 했다. 명예, 권한, 보람 등이 전혀 없진 않았지만 그 모든 것을 합쳐도 책임의 무거움을 보상하지 못했다. 우리 사회의 윤리, 인권, 교육, 환경문제 등에 대한 한 지식인이요 기독교인이 가져야 할 의무감 때문에 그 짐들을 거절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제 늙어 버리니 그런 짐을 질 수도, 지라는 요구도 없고 져야 할 위치에 있지도 않으니 가책도 느끼지 않는다. 아주 홀가분하다. 텔레비전이나 신문에서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아도 남의 일 같아서 “잘들 노네!”하고 빈정거릴 뿐 화도 크게 나지 않는다. “그래도 옛날보다는 낫지 않은가!”
모임에 결석해도 별로 미안하지 않아 좋다. 결혼식에 늙은이가 기웃거리는 것은 어울리지 않고 상가에 문상하려니 늙었는데도 살아 있는 것이 상주에게 미안하다. 아마 혼주나 상주들도 노인이 식장이나 빈소에 얼른거리는 것보다는 축의금이나 조의금을 간접적으로 보내주는 것을 더 선호할 것 같다. 다른 모임들에도 노인은 “와도 그만, 안 오면 더 편할” 존재다. 귀가 어두워 잘 알아듣지도 못하면서 괜히 엉뚱한 소리로 아까운 시간을 축내기보다는 아예 빠져주는 것을 더 바랄 것 같다.
높은 벼슬이나 명예도 남의 일이다. 젊었을 때는 감당할 수 없다고 느껴서 사양했지만 지금은 주지도 않고 주어도 물론 감당할 수 없다. 그러니 바랄 이유도 없고 부럽지도 않다. 관중석에 편하게 앉아서 연극 보듯 바로보기만 하면 된다. 물론 서로 싸우는데 국민이 바친 세금을 써버리는 국회의원들이나 돈 많이 버는 의사들이 파업하는 것을 보면 “저래도 될까?” 걱정도 되지만 어차피 내가 살 세상도 아니고 고칠 수도 없으니 괜히 화낼 이유가 없다. 세상 일, 교회 일에 핏대를 올리는 늙은 친구를 보면 “이보게, 이제 우리 세상 아니야!”하고 충고한다.
아직도 몇 단체의 위원장, 이사장, 명예 이사장, 고문 등의 이름은 갖고 있지만 간섭하거나 걱정해야 할 곳들은 피했으므로 큰 짐이 아니다. 다만 거기서 공익을 위해 선한 싸움을 싸우는 사람들에게 폐 끼치지 않으려면 욕먹을 짓만 안 하면 된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어렵지 않다. 욕심이 없으면 욕먹을 일도 없으니까.
그리고 오래 사니 그만큼 더 경험하고 깨닫는 것도 있고 그 가운데는 매우 소중한 것도 없지 않아 감사한다. 일찍 죽었더라면, 그리고 여기저기서 강연을 하거나 설교하는 기회가 없었더라면 미처 깨닫지 못했을 수도 있고 그 가치를 충분히 인식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물론 항상 그랬지만 깨달은 만큼 실천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물론 아직까지는 건강이 받쳐주고 가정이 평화로우며 좋은 친지들과 믿음직한 후배들이 주위에 많이 있으니 이런 소리도 할 수 있지 않나 한다. 그러나 노인 건강은 믿을 수 없으니 이런 특혜도 곧 끝나겠지. 큰 사랑은 베풀지 못하더라도 내 발로 화장실에 드나들 정도로 가족에게 짐이 되지 않고 남에게 폐 끼치지 않을 때까지만 살다가 아주 조용하게 하늘나라에 갈 수 있으면 좋겠다.
# 손봉호교수 회고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