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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치유(治癒)굿판
이름 이정범
작성일자 2018-03-16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런 얼삐진 짓을 왜 했는지 모르겠다.

의사요, 교수요, 게다가 예수를 믿는다는 내가 이런 행동을 했었다니 도무지 믿기질 않는다.

병 나으려고 굿을, 그나마 한마당 푸닥거리가 아니라 밤늦도록 산위에서 큰 굿판을 벌린 적이 있었다.

외과 전공의(resident) 2년차, 경북대학교 병원에서 전문의 수련(修鍊)을 받을 때.

그 때는 해야 할 일도  많았고 놀기도 무척  바빴다.

그 해 여름, 어느 날부턴가 오른쪽 옆구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유독 밤에 자리에 들어 눕기 만하면 콕콕 쑤셔댔다.

귀신 곡할 일, 마치 못된 귀신이 밤에만 찾아와 골탕을 먹이는 것 같았다.

아마 낮에는 일을 하느라 미약한 통증을 미쳐 느끼지 못했을상 싶다.

가슴 사진을 찍어보니 우측 제 8번 늑골 중간쯤 뼈가 거의 반 이상이 벌레가 파먹은 것처럼 까맣게 변해 버렸다.

흉부외과 교수님이 뼈 결핵 같다고 하셔서 결핵약을 한 달 동안이나 복용했으나 차도가 없어서 재진을 받아 보니 암이라고 하시면서 수술을 해야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늑골 제거 수술을 받았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병명은 악성 암의 일종인 호지킨(Hodgikin)씨 병이었다.

뼈 조직검사는 즉시 결과를 알 수 없었고 일정기간 특수처리를 한 후 병명을 알 수 있었다.  

문제는 퇴원 후에도 수술한 자리가 아물지 않고 아프고 고름이 나왔다.

그래서 밤마다 잠을 설쳤고 검은 황소가 날뛰는 꿈을 꾸곤 했다.

계모님과 장모님께 꿈 이야기를 했더니 매우 놀라는 기색을 하셨다.

그런 꿈은 죽은 조상님들의 꿈이니 님들의 혼을 달래려면 굿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고선 하도 기가막혀 한참 동안을 뭐라고 말을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두 분의 말씀을 들어야지 싶어 좋을 대로 하시라고 하였다.

그래서 찾아 간 곳이 앞산 순환도로 길 가 어느 용하다는 무당집이었다.


처음으로 무당집엘 들어서 보니 음침하고 소름이 돋았다.

방 한가운데는 흉칙한 돼지 머리에 제물이 한상 가득 차려있었고 무당 옷차림을 한 무녀(巫女)가 떡하니 앉아 있었다.

그 때 부터 무녀가 시키는 대로 해야만 했다.

나에게 푸른 잎이 달린 대나무 가지를 두 손으로 꼭 잡고 있으라 하고선 무녀는 북을 두드리며 무당 특유의 주문을 욌다.

죽은 조상님들의 혼을 부르는 주문이라고 했으나 자세한 것은 알 길이 없었다.

무당이 주문을 외면 조상님들의 혼이 내려오고, 잡고 있는 대나무가 흔들리게 된다는 것이었다.

가소롭다고 생각했지만 한편 흥미로운 마음도 있었다.

무녀가 내 얼굴 표정을 보더니 정성을 드려야만 한다고 나무랬다.

그 와중에 밤은 점점 깊어갔고 대나무는 도무지 떨릴 것 같지 않았다.

점점 안달을 내는 무녀.

내 정성이 부족하다고 벌컥 짜증마저 냈다.

얼마나 지났을까?

무당이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하면서 갑자기 산위로 올라가잔다.

따라 올라갈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깜깜한 밤에 앞산을 한참을 올라 산 중턱 어느 바위 아래에 촛불을 켜고 이전처럼 또 주문을 욌다.

무당의 처절한 주문에도 대나무는 끝내 떨리질 않았다.

하지만 그때 등골이 오싹하며 소름끼치는 장면이 펼쳐졌다.

그날은 바람 한 점 없이 별들만 보이는  칠흑 같은 밤이었다.

굿판 마지막에 소지(燒紙) 불을 붙여 하늘로 올려 보내는데 그 불이 공중으로 올라가다가 급전직하로 나를 향해 곧바로 내리꽂히는 게 아닌가!

나는 불꽃을 피하느라 몸을 움찔했다.

이 모습을 본 무녀는 나를 호되게 꾸짖었다.

그처럼 정성이 부족하니 조상님이 노하셔서 벌을 내리는 것이라고 했다.

그 말에 나는 한동안 넋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허공만 바라 봤을 뿐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이렇게 해서 나는 한여름 밤을 얼룩지게한 굿판으로 계모님과 장모님의 원을 풀어드린 적이 있었다.  

지금은 그 굿판의 기억마저도 희미해지는 산수(傘壽)의 나이를 살고 있다.

암이 언제 도질지 몰라 살얼음 걷듯 조마조마하게 살아온 세월이 어느듯 50여년이나 지났는데도 아직도 나는 말짱하다.

그러나 그날 벌린 굿이 제 아무리 영험(靈驗)했을지라도 오늘 나의 이 멀쩡함과는 아무 상관이 없을 것 같다.

오로지 오늘까지 살아있음에 주님께 감사드리고 영광돌릴 따름이다.


                                                                                                                       대봉교회 생명나무 제94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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