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유는 수컷 스피츠 종으로 세 살이다.
외손자가 미국에 공부하러 가면서 우리 집엘 맡기고 갔다.
지금까진 건강하게 잘 놀았는데 엊그저께 이빨 칫솔용 껌을 먹인 후로 먹지도 않고 물똥을 싼다.
물도 마시지 않는다.
물그릇을 입에 갖다 대도, 설사에 좋다는 매실 물도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그러나 노는 모습은 전과 똑 같다.
꼬리도 살랑살랑 흔들고 소파를 잘도 뛰어 오르내린다.
문제는 마누라다.
개가 배탈이 났다고 야단이다.
노는 걸 봐선 틀림없이 괜찮을거라고 해도 막무가내, 들은 척도 안 한다.
마냥 안달을 내고 안절부절하면서 호들갑이다.
옆에서 보자 하니 슬며시 부아가 치밀어 오른다.
남편이 감기 기침으로 콜록거리고 엄지발가락 부상으로 발톱이 빠져 그렇게 아프다고 했는데도 아랑곳 하지않던 아낸 데 말이다.
개가 물똥 한 번 쌌다고 저토록 안달일까?
과연 듣던 대로 남편이 개보다 못하단 말이 맞는 말이구나!
서열 5위 밖으로 밀려나버린 내 신세로구나!
하물며 황혼의 나이가 되어 별 볼 일 없는 남자가 돼버린 나일진 데 일러 무삼하리오!
나이 들면 남자와 여자가 중하게 여기는 것이 서로 다르다고 한다.
남자가 중하게 여기는 것은 건강, 마누라, 일거리, 재산, 친구, 명예 등의 순서로 특히 처, 아내, 마누라, 와이프, 집사람, 안사람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고 농하는 사람도 있다.
반면, 여자는 돈, 친구, 건강, 애견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남편으로서, 서열이 개 다음이라고 한다.
이로 미루어 볼 때, 내게는 마누라가 제일 중요하지만 마누라에겐 캔유가 나보다 서열이 위에 오게 된다.
설마 그럴까? 하고 의심해 왔는데 이번 캔유 일로 인해 그 말이 틀린 말이 아니구나! 라고 확신하였다.
지금부턴 마누라 눈에 들도록 캔유와 서열 다툼이라도 해야 할까보다!
나는 개를 좋아해서 여태까지 여러 종류를 길러 봤다.
하지만 식구들보다 개를 더 중요시 한다는 것은 내 상식으론 도저히 납득이 안 간다.
캔유 먹이만 봐도 내가 일상 먹는 것과는 비교가 안 된다..
연어를 건조 시킨 먹이에다 크린베리바나나큐브, 바나나코코넛큐브, 당근듬뿍큐브, 딸기치즈큐브, 폭신사과큐브, 블루베리치즈레이어큐브, 베리베리큐브 등 이름조차 부르기 힘든게 많다.
우리 부부는 황혼의 나이지만 금슬만은 과히 나쁘지 않다고 치부해 왔다.
하지만 최근 일어난 일로 미루어 봐서 내 서열이 캔유 다음인 것만은 틀림없다.
말 못하는 짐승에 연민의 정을 가지는 게 마땅하리요 마는, 아내의 관심 서열 5위 밖으로 밀려나 버렸구나. 라고 생각하니 왠지 씁쓸해진다.
아직도 대 경북대학교에 적을 두고 목 고개 힘주며 사는 교수인 나도 이런 대접을 받는데,
하물며 거시기에 힘 빠지고 돈 없이 뒷방 늙은이로 전락한 별 볼일 없는 뭇 남자들, 황혼의 남자들은 과연 어떠할까?
하기야 남자 나이 70을 넘으면 지나가는 개도 외면 한단데, 내 신세가 개만도 대접 못 받는 초라한 늙은이로 추락해버렸단 걸 명심하고 앞으론 그저 맞소, 옳소, 그렇소. 하며 마눌님께 알랑대고 살아 갈 수 밖에!
좋은 인연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가야 하는 법.
돌아누우면 남이란데 자칫 잘못하다간 웬수 되기 십상!
함께 하되 거리를 두어 바람이 통하고 자유 공간도 따로 두어야 하는 법.
사랑하되 서로 구속돼선 곤란하고 신경써주야 백년해로를 한단 데,
앞으론 정신 바짝 차려야겠다.
마눌님 눈 밖에 안 나게 시리!
개값도 못하는 쪼다 가장이란 소리 안 듣게 시리!
내 가정 개판 안 되게 시리!
대봉교회 생명나무 89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