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친지 어언 40여 년이 다 돼간다. 처음엔 골프를 어떻게 치는 줄도 모르고 바로 필드로 가서 라운딩(rounding)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이는 훈련도 받지 않고 바로 적진에 뛰어든 어리석은 병사와도 같다. 멋대로 휘두르는 골프인지라 스윙 폼(swing form)이 엉망이었고 성적도 기대치 이하였다. 하지만 그에 개의치 않고 지나다 보니 오늘까지 왔다. 지난날의 애환(哀歡)들을 돌이켜 보니 만감이 교차할 따름이다.
더 멀리, 더 정확하게(farther & surer)는 모든 골퍼의 영원한 화두(話頭)다. 골퍼(golfer)들 저마다의 소망을 갖고 있겠지만 나도 결코 이 화두로부터 자유로울 순 없었다.
하여, 이 신기루를 잡기 위하여 아까운 돈과 시간 그리고 청춘을 아낌없이 불태웠다. 자연과 더불어 즐기면서 자연을 원망도 했고, 때로는 자연에게 감사도 했다.
오늘은 드라이브(drive), 어제는 벙커 샷(bunker shut) 그리고 내일은 어떤 샷(shut)이 나를 괴롭힐까? 하고 항상 조바심을 가졌다.
필드에 들어서기 전에 늘 다짐해 보는 것이 있다. 오늘은 실수를 안 해야지! 라고 맘먹지만 끝난 후에는 항상 후회가 따르는 운동이 골프였다.
이런 아쉬움을 달래고 보상이라도 하듯 국내외 여러 골프장들을 많이도 돌아다녔다.
지금 생각해 보니 무모했던 내 자신이 참 부끄러워진다.
내 스윙 폼(swing form)으론 좋은 성적을 내기는 어려웠으나 나름대론 최선을 다 하였다. 그러나 스윙에 대한 열등감으로 항상 자신감이 모자랐다.
하기야 나도 폼이 이상한 사람들을 보노라면 속으로 많이 비웃었었다. 지금 생각하니 내 스윙을 보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얕잡아보거나 비웃었을까? 를 생각하니 얼굴이 후끈 달아오른다.
아마도 내 폼이 가관(可觀), 그 자체였을는지도 모른다. “네 자신을 알라.”란 말처럼 내 스윙에 대해서 잘 몰랐으나 동반자들이 가끔 내뱉는 말들에서 어렴풋이나마 감은 잡을 순 있었다. 폼이 이상하기는 한데 어디가 어떻게 틀렸는지를 모른다는 것은, 골프 스윙에 대한 정확한 지식이 없어서일 게다. 그렇다고 어느 누구도 꼭 집어서 어디가 틀렸다고 말해주는 이는 한 사람도 없었다.
그 와중에서도 골프를 계속한 것은 너무 재미있었기 때문이었다.
내 기억으론 여태까지 제일 잘 친 공식기록으로는 1994년 영, 호남 의사친선 골프대회에서의 81타였다.
잘 모르긴 해도 홀인원(hole in one) 회수는 아마 타의 추종을 불허할 것 같다. 국내 이곳, 저곳에서 4회, 국외에서 1번으로 1983년 2월 5일 입춘 날에 이룬 첫 번째 기념식수가 현재도 경산 대구 C. C. 중코스 2번 홀에서 그 자태를 뽐내고 있다.
내 청춘을 골프와 함께 보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골프의 유일한 단점은 너무 재미있는 게 흠이라고 하는 친구의 말에 전적으로 수긍이 간다.
그런데 골프연습을 제대로 할 수 있는 계기가 생겼다. 2011년 1월, 경북대학교 보건소에 직장을 가진 후 부터다.
시간만 나면 경북대학교 골프인도어에서 연습을 할 수 있었다. 물론 인도어에 코치 선생님이 파견되었지만 요즈음 젊은 사람들이 흔히 쓰는 말로 ‘쪽 팔려서’ 레슨(lesson)은 받지 않기로 했다, 몇 십 년간 골프 쳐온 내 얄팍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서다.
혼자서 하나하나 깨닫고 또 귀동냥하면서 골프를 익혔다.
연습하면서 느끼게 된 것은, 골프도 하나의 도(道)를 닦는 과정과 같구나! 라는 것이다.
나쁜 버릇, 틀린 것들을 하나하나 깨닫고 고쳐가는 즐거움. 이거야말로 공자님의 학이시습지불역열호(學而時習之不亦說乎)가 아닐까?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몸의 상태 때문인지 연습 때마다 스윙 감(feeling)이 다르다는 걸 느꼈다.
오늘 연습한 폼이 맞을 것 같아 다음 필드에서 플레이 해 보면 틀렸다는 것을 금방 알게 된다. 그 다음 날 또 다른 폼으로 바꿔서 다시 필드에 가서 새로운 감으로 쳐 본다. 이렇게 하여 여러 시행착오를 겪은 후에 나름대로 최선의 나의 것을 만들어 갔다.
그야말로 일신일일신우일신(日新日日新又日新)이었다. 또 기초 이론도 공부하고 TV에서나 컴퓨터에서 가르치는 레슨들도 열심히 보고 익혔다.
골프가 예전에 보리타작할 때 도리깨질과 많이 닮았다고 생각한 것은 내가 촌에서 자랐기 때문이리라. 어떻게 효율적으로 도리깨질을 잘 해야 임팩트(impact)와 스매시 팩트(smash factor)를 높일까? 를 골똘히 생각했다. 이렇게 하여 싱글(single)이 되려는 나의 열망은 점점 도를 더해만 간다.
좀 더 젊은 나이에 이정도로 열심을 냈다면 싱글의 꿈을 벌써 이룩했겠지!
하지만 종심의 나이를 훨씬 넘은 내 골프여정에 비(飛) 거리가 줄어들고 스코어(score)도 점점 나빠지기만 하니 이 일을 어찌할꼬! 갈 길은 멀기만 한데 서산 너머엔 해가 지고 있구나!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단데 이 늙은이가 그토록 바랐던 것은 정녕 신기루였단 말인가?
어느 재벌가가 살면서 자기 맘대로 할 수 없었던 세 가지 중의 하나가 골프라고 했는데 그 말이 정말 가슴에 와 닿는다.
골프가 나를 애태웠고 골탕을 먹였지만 오기와 재미 하나로 여태까지 버텨왔다.
즐기다 보니 덤으로 얻게 된 것은 바로 인생 공부였다.
골프는 신사 운동이었다. 신사도가 꼭 필요하였다.
스코어를 올리려면 요령이 필요한데 인생도 요령 없이는 곤란하더라!
서두르거나 화를 내면 불리한 결과로 부메랑이 되어 내게로 돌아왔다.
속이거나 골프 룰(rule)을 위반할 생각일랑 아예 말아야 했다.
골프도(道) 안에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의 모든 길이 보였다.
골프건 삶이건 즐기는 길이 가장 좋을 것 같은데 그 길은 단 한 길 뿐, 우리 모두 그 길을 찾아야만 하겠다.
경북대학교 명예교수회지 제 16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