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위 사람들이나 환자들이 "가정의학과는 무슨 일을 합니까?"라는 질문을 자주 받습니다.
그럴 때면 가정의학이란 무엇이며 가정의학과에서는 어떤 일을 하고 어떤 환자를 보는 곳이란 것을 되도록 쉽게 또 자세히 설명해 주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듣는 사람은 얼른 이해가 가지 않는지 고개를 갸우뚱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면 가정의학이란 어떤 것이고 어떤 의학인지를 쉽게 설명드려보겠습니다.
가정의학이란 "연령, 성별, 질병의 종류에 관계없이 가족을 대상으로 지속적이고 포괄적인 의료를 제공하는 학문"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정의학이 가정을 다루는 의학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말은 틀리지는 않은 말이지만 점수로 따진다면 30점 정도밖에 못 맞춘 것입니다.
왜냐하면 가정의학은 그 이상의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가정의학이 시작된 그 역사적 배경부터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가정의학(Family Medicine)이라는 이름을 가진 의학분야는 1969년 미국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옛날 미국의 의과대학이나 의학교는 허가제가 아니고 신고제였으므로 실력 없는 의사를 양산하는 의학 강습소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1910년 미국정부는 풀랙스너라는 사람을 책임자로 해서 의과대학을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기준에 맞지 않는 학교는 모두 폐교시키고 의과대학과 같은 틀을 갖추기 시작했고 의료가 대학병원 중심으로 변하면서 현대 미국 의료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과학의 발전에 따라 의학 지식이 늘어나면서 의학이 전문화되기 시작했습니다. 내과도 소화기내과, 심장내과, 호흡기내과, 신장내과, 감염내과, 내분비내과, 류마치스내과, 혈액내과등으로 나뉘어지고 소아과, 산부인과, 안과, 이비인후과도 전문화와 세분화를 거듭하게 되었습니다.
의학 기계 기술이 발전하고 의료가 이렇게 전문화(Specialize)되고 세분화(fragment)되면서 질병에 걸린 사람에 대해 질병이나 장기에 대해서 접근하게 되고 전체적인 인간으로 보는 인간적인 면이 소홀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의료가 비인간화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단과 전문의가 많아지면서 의료비 부담의 증가도 문제가 되어되었습니다. 이러한 의료현실에 대해 일반인들의 인식이 확산되면서 여성단체와 소비자 단체, 학자들이 문제를 제기하였습니다. 1966년에는 이 단체들이 중심이 되어 보고서가 만들어졌습니다.
그 보고서의 골자는 첫째, 전문의에 비해 일차의료를 담당할 의사가 너무 적다. 둘째, 도시에 비해 시골의 의사 수가 너무 적다. 셋째, 과학적이기만 한 의학에 인간적인 진료가 결합되어야겠고, 가정에 환자가 생기면 그 가정이 흔들리고 역으로 그 가정이 흔들리면 그 가정에 환자가 생기는 법이며, 따뜻한 가정 속에서는 환자의 질병도 잘 낫는 법이니 환자를 가족 범위에서 진료하는 일차 진료의가 많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위의 의료보고서를 읽을 때 우리 나라의 의료현실과 너무나 닮은 점이 많다고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미국에서는 1969년 20번째의 전문과목으로 가정의학과가 탄생되었고 우리 나라에서는 그로부터 약 10년 후에 1979년에 도입되어 1985년에야 23번째의 전문 과목이 된 것입니다.
즉 가정의학은 현대의학이 발전되어서 앞으로 나아가기는 하지만 처음의 취지와는 다르고 자꾸 세분화되고 이대로 나가다가는 너무나 비인간화의 길로 가지 않는가 하는 생각에서 탄생된 전인적인 진료(TOTAL CARE)의 의학인 것입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가정의학이란 어떤 환자를 치료하는 것일까요?
여러분이 병원에 가시면 각과에서 그 과에 해당하는 각종 병들만을 치료한다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눈의 병은 안과에서, 어린이들은 소아과에서, 엑스레이 사진을 찍으려면 방사선과에 가서 찍습니다.
이 모든 전문과목들의 명칭은 안과나 이비인후과처럼 치료하는 신체기관의 이름으로 되어 있든지 소아과나 산부인과처럼 치료하는 환자의 인구학적 특성으로 되어 있거나, 방사선과처럼 그 과에서 이용하는 의료수단의 이름으로 되어 있는데 가정의학과의 가정이란 것은 신체기관명도 아니고 주로 다루는 환자들의 인구학적 특성도 아니며 또한 진단 수단도 아닙니다. 가정의학은 치료대상이 가족이라는 것 외에도 어떤 신념체계에 의해서 생겨난 의학이며 이런 점에서 일반인들이 가정의학을 이해하는데 어려운 이유가 되는 것 같습니다.
오늘날의 가정의학이 있게 된 신념체계란 과연 무엇일까요?
첫째, 환자에 대한 폭이 넓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눈은 안과, 어린이들은 소아과와 같이 각 전문과가 그에 해당하는 병만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것이 아니고 그 병이 어느 과의 병이든 흔한 질병이면 환자가 어린이, 노인, 남자, 여자 상관없이 포괄적으로 치료한다는 것이고 둘째, 환자의 건강과 질병은 그 가정을 중심으로 가족이라는 문맥에서 파악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이웃 철수네 집 온 가족이 우울하고 풀이 죽은 것은 철수 어머니가 중병을 오래 앓고 있음으로써 오는 것이고, 영희가 자주 아픈 것은 영희 아버지, 어머니가 자주 부부 싸움한 결과로 온다는 것을 가정의들은 알 수가 있습니다. 셋째는 건강을 전인적으로 파악한다는 것입니다. 가슴이 답답하고 아프다고 온 사람을 가슴 엑스레이만 찍어 보고 가슴 사진이 괜찮으니 그냥 집에 가보라고 할 것이 아니라 이 환자가 가슴아픈 원인이 어떤 정신적인 것이 아닐까? 를 생각하고 환자를 육체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정신적 사회적으로도 파악해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신념 체계들이 오늘날의 가정의학을 있게 한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겠으며 생각해 보면 의료란 당연히 그러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이제 가정의학이 무엇이며 가정의학과에서는 어떻게 환자를 진료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연령, 성별, 질병의 종류에 관계없이 가족을 대상으로 지속적이고 포괄적인 의료를 제공하는 학문' 이라는 가정의학의 정의에 대해서도 이해가 되시라 믿습니다.
모든 질병의 약 90%가 환자의 처음 일차진료의 선에서 해결이 가능하고 이 일차의료를 담당하고 있는 것이 바로 가정의학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가정의의 역할은 중요하다고 하겠습니다.
杏林春秋 1996.겨울 제 20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