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유는 개 이름이다. 하얀 털이 뽀송뽀송 난 쪼그마한 스피츠종으로 참 앙증스럽고 귀엽다.
2년 전 미국에서 공부하는 외손자가 방학 때 집에 와서 너무 심심할까 봐 사위 부부가 어렵사리 구해 준 애완견이다.
손자애가 방학이 끝나고 다시 미국으로 간 후 가끔 봐달라고 맡기곤 하더니만 이제는 아예 우리 집에서 길러달란다.
그러하마고 승낙은 했지마는 속으로는 별로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여태까지 여러 종류의 개를 길러보았지만 아파트로 이사 온 이후에는 아예 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파트에서 개를 기르기에는 여러 제약이 있고 또 몇 년 전에 기르려고 시도해 보았지만 너무 크게 짖어대는 바람에 이웃에 폐가 될까봐 며칠 만에 포기한 적도 있다.
그런데 애견본색(愛犬本色)은 숨길 수 없는 것인가? 데려 온 캔유에게 점점 정이 가는 걸 어쩌랴! 마는 문제는, 캔유가 나를 따르지 않고 심지어 무시하는 기색이 역력하다는 점이다.
수놈이 암컷을 따르는 건 당연하지마는 이 녀석이 어인 까닭인지 집사람 뒤만 졸졸 따라 다닌다.
어쩌다 우리 부부가 외출 한 후 현관에 들어서면 언제 나타났는지 잽싸게 달려와 집사람에게만 눈길을 맞추고 펄쩍 펄쩍 뛰어 오르는 반면, 나는 거들떠보지도 않을 때는 부아가 치밀어 올라 콱 걷어차 버리고 싶은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어디 그 뿐인가? 모처럼 한가한 시간을 틈타 TV를 볼 때도 집사람 옆에 팔자 좋게 발랑 드러누워 있는 꼴이 가관중 가관이라, 참 개 팔자가 상팔자란 말이 이럴 경우에 쓰는 구나싶기도 하다!
하기야 지금까지 먹이 뿐 만아니라 개를 위한 서비스는 집사람 혼자서 도맡아 해온 결과 캔유의 사랑을 독차지했으리라고 짐작은 해본다.
하지만 개한테 까지도 왕따를 당하고 있다는 생각에 그만 풀이 죽어 내 자신이 가여워 지고 처량하게 생각된다.
안 그래도 요즈음 들어 이런 저런 일로 부쩍 기가 죽어있는 나인데 말이다.
그래서 며칠간의 숙고 끝에 묘안을 생각해 냈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말이 생각나서 캔유 꼬시기에 돌입했다.
첫째, 캔유에게 아양 떨기, 생글생글 웃으면서 쳐다보고 말 걸기
둘째, 먹이 직접 주기
셋째, 공놀이 자주하기
넷째, 자주 안아주기로 한 것이다.
종심(從心)의 나이를 훌쩍 넘은 74세의 괴테는 19세의 울리케 폰 레베초란 어린 처녀에게 홀딱 반한 나머지 그 나이에 청혼까지 했지만 나도 그와 같은 나이다.
나 역시 순정이 있고 열정과 욕망, 연민의 정감은 누구 못잖을 것 같다.
캠퍼스를 오고 가는 사이에 보게 되는 저 예쁘고 발랄한 학생들, 또 진료실에서도 매일 만나게 되는 세계 각지에서 유학 온 국내, 외 미녀들을 볼 때면 마음에 묘한 물결이 일렁거릴 때가 가끔 있다.
하지만 손녀 뻘의 학생들에게 티끌만한 불미스런 곁눈을 돌리는 걸 눈치라도 체이는 날이면 늙은 교수가 노망이 들어도 너무 들었네! 라는 낙인을 평생 뒤집어쓰고 살아가야만 할 것을 생각하면 섬찍해 진다.
그래도 한편에는 세월아 비켜라 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인데! 라는 노래 가사처럼 낭만에 대한 미련같은 것이 빈 가슴 한 구석에 아직 남아있음을 어쩌랴!
그런데 뜻밖에도 이 순정을 엉뚱하게나마 캔유에게 쏟을 기회가 생긴 것이다.
비록 구원의 여인은 아닐망정 한낱 보잘 것 없는 캔유의 견심(犬心)이라도 차지해 보려고 애쓰는 늙은이의 심정을 캔유야 알랴마는, 견공(犬公)에게 향하는 나의 순애보만은 뜨겁기 그지없다.
한편 생각하니 나는 짝사랑을 하는 셈이고 어찌 보면 동성애자다.
오늘도 나는 캔유를 꼬신다 .
캔유씨! 사랑해, 우리 공놀이 안할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