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시중에는 오승근의 노래 “내 나이가 어때서” 라는 노래가 히트하고 있다.
노래가사가 재미있고 부르기도 쉬워서 어느새 나도 자주 따라 부른다.
문제는 이 노래 가사 내용과 비슷한 경우가 나에게 생길 줄이야 꿈에도 예상치 못했다.
비록 남녀 간의 사랑이야기는 아니지만 나이 때문에 발생한 일이였기 때문이다.
10여 년 전 대학병원에서 근무 할 때였다. 우연한 기회로 모 재활원에 촉탁의사로 발탁이 되어서 일주에 한번 꼴로 가서 일하게 되었다.
원생이 180여명 가량 상주하는 이곳에는 온갖 장애자들이 다 수용되어 있는 국가기관이다.
대다수 원생이 인지기능이 부족한 자폐증을 비롯한 정신장애자들이고 그 외에 지체장애 및 여러 신체 내, 외부 장애를 가진 원생들이지만 그중 몇몇은 거의 정상인과 다름없이 일상생활을 잘 하고 있는 애들도 있는데, 그네들도 자세히 지켜보면 어딘지 모르게 좀 이상하거나 모자란 애들로서 이런 애들은 사회적응 후 자립하는 애들도 가끔 볼 수 있었다.
별난 애들 중에는 왼 종일 방구석에 않아서 한마디 말도 없이 끊임없이 몸을 구부렸다 폈다 하면서 하루를 보내는 자폐아가 있는가 하면, 들어 누워서 소리만 빽빽 질러대는 원생, 걸핏하면 남과 싸우거나 구타를 일삼는 난폭한 애가 있나하면, 희라는 여식 애는 생김새가 하도 이상해서 재활원의 마스콧 역할을 한 여식 애였는데 천부적으로 춤 솜씨만큼은 끝내주는 애라 노래 곡조에 맞추어 추는 춤 솜씨에 놀라움을 금치 못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게다가 그 애는 내가 일을 다보고 퇴근 할 때는 주차장까지 따라 나와 손을 흔들어 배웅을 해 주는 착한아이였다.
숙이라는 여자애는 내가 오는 날만을 손꼽아 기다린다면서 갈 때마다 나타나 모든 것을 거들어 주지만 특이한 점은 마누라보다 더 잔소리를 많이 해댄다는 것이었는데, 예를 들면 술을 많이 마시지 말라든지 너무 돈을 헤프게 쓰지 말라는 둥, 내 양말이 펑크가 났다는 둥 일거수일투족을 다 간섭하면서, 다음에 올 때는 양말을 꼭 사다놓겠다고 하면서도 진작 사 놓기는 커녕 거짓말을 밥먹듯 해 대는 아이지만 웬일인지 밉지 않는 아이였다.
이렇게 몇 년을 보내는 사이에 나도 모르게 이들과 정이 들게 되었고 순진하고 거짓이 없는 이들의 생활상에서 적나라한 인간의 본성에 대해서 한 번 더 생각하게 되고 이들로부터 오히려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낄 수 있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하는 일이라야 원생들 한 번 쭉 둘러보고 차트 정리한 후 아픈 애들 처방하고 나면 업무가 다 끝나는 단순 업무로서 나 같은 박사요, 교수요, 전문의가 아니라도 의사이면 누구나 능히 감당할 수 있는 그런 간단한 일이다.
월급도 제법 되지만 상당액을 재활원에 기부하고 교통비조로 몇 푼 받으면서 사회의 일원으로서 봉사차원에서 좋은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뿌듯한 자긍심과 큰 보람을 가지고 일해 왔다.
그런데 작년 12월 어느 날, 섭섭한 소식을 전해 왔다. 매년 기관에서 받는 연말 감사에서 촉탁의사 나이가 너무 많다고 지적됐다면서 후임에 60살 이하의 젊은 의사를 구해야만 한다고 통보가 왔던 것이다.
이런 소리를 듣고 보니 이는 구청 직원이 뭘 몰라도 한참 몰라서 하는 소리라고 생각하면서 이런 일에는 나 같은 한물 간 의사가 해야지 젊은 의사가 하기에는 너무나 한가한 단순노동이라고 담당 직원에게 설명해도 묵묵부답, 상부에서 시키는 대로 해야 된다면서 막무가내다.
내 나이 새해 들면 우리 나이로 73세. 혹자는 나이가 너무 많은 늙은 의사라고 생각 될는지 모르지만 나는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마음만큼은 아직 청년이다. 이런 단순한 일은 나 같은 늙은 의사가 하기에 딱 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내 나이가 어때서” 라고 구청 감사관에게 가서 항의라도 해 볼까? 라고도 생각해보지만, 상선약수(上善若水)라, 참아야지! 참는 자에게 복이 돌아오고 모든 것을 물 흐르듯이 살아가자고 결심한 나였기에 미련 없이 직원들과 작별하고 재활원을 떠났던 것이다.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라고 읊조린 시인 두보(杜甫)는 회갑도 못 넘기고 59세에 갔지마는 나도 어느덧 종심(從心)을 넘어 중노인으로 향해가고 있구나!
거울에 비쳐진 내 얼굴도 이제 보니 영락없는 중늙은이로서 내가 나를 몰라도 너무 몰랐다고 자책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내가 그렇게 늙었나? “세상아 비켜라, 내 나이가 어때서”, 나이 때문에 그만 두야 한다니 참 억울하기도 하다마는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해야만 한다는 공무원의 경직된 사고 앞엔 어쩌리오!
이제 더 이상 그 명랑하던 순이, 송이, 지영, 이들과 영영 결별해야만 하다니, 그 순진한 애들을 이제는 볼 수 없게 되다니, 정녕 회자정리(會者定離)로구나!
이런 걸 생각하면서 나는 오늘도 이 노래를 처량하게 불러본다.
“야~야~야, 내 나이가 어때서…….”
대구 기독문학 제 10호
대봉교회 생명나무 제 90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