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4월 말 무렵, 대구적십자병원에 외과과장으로 근무 할 때였다. 교장선생님이 배가 아프시다면서 오셨다.
진찰 결과 병명은 담석증이었고 큰 병원에서 수술 받으셔야한다고 간곡히 권하였다.
그런데도 교장선생님의 말씀은 며칠 후에 화란에서 손님이 오실 예정인데 손님들을 만나본 후 수술하겠노라고 하시면서 “만일 수술 할 병이라면 정범이 네 한태 와서 수술을 받을란다.” 라고 하시면서 가셨다.
그로부터 얼마 후 5월 19일, 교장 선생님이 복부통증을 호소하시면서 다시 오셨다.
진찰결과, 고열과 황달증세를 보여서 급히 동산병원중환자실로 모시고 가자 곧바로 패혈증(敗血症)증세를 보이며 의식소실과 더불어 쇼크(shock) 상태에 돌입하셨다.
호흡도 불안정하시어 인공호흡기(ventilator)를 부착한 채 집중진료를 하였다. 그 와중에서도 동산병원에서 높은 직위에 계시던 의사 선생님들 거의가 오셔서 치료대책에 동참하셨던 것이 기억난다.
그리고 아드님인 전 성은선생님도 병원에 일찍 도착하시어 나와 같이 간호하였다.
의식소실은 밤새 계속되다가 새벽 3시쯤 정신이 일시적으로 돌아오셨는데, 그때 몸소 화장실로 가셔서 변을 보시는 교장선생님에게 직접 묻기를 “동산병원을 퇴원하여 장 기려 원장님이 계시는 부산 복음병원으로 바로 가실까요?” 라고 여쭈어 보니 고개를 끄덕끄덕 하셔서 그렇게 하마고 전성은 선생님하고 상의 중에 다시 의식이 없어지고 쇼크 상태로 돌입하셨던 것이었다. 그 길로 회복하지 못 하시고 1976 년 5월 20일 오후 2 시경에 운명하시고 아드님 되신 전 선생님과 같이 임종을 지켜보았다.
운명하신 직후 동산병원의 협조를 얻어서 엠뷸런스로 거창에 도착하니 거창 다리에서부터 학생들과 시민들이 길옆에서 도열하여 교장선생님의 마지막을 영접하고 있는 것이 지금까지도 눈앞에 생생하다.
아! 교장선생님, 처음 오셨을 때 강력하게 수술을 권했더라면 좀 더 오래 사셨을 걸, 지금 생각하니 후회가 막심하다.
하나님도 무심하시지! 이런 분을 일찍 데려 가시다니! 수술 일정을 미루시고 학교에 헌신하다가 순직한 고 전 영창 교장 동상에 새겨진 추모의 글이 새롭다.
불의 앞에서는 맹수보다 더 하시고 일신의 고난 앞에선 위대한 노예로 순진했던 이!
임은 살아생전에 우리에게 빛과 소금이었고 죽어선 한 알의 밀알로 이 땅에 묻히셨도다.
거창고등학교회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