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나의 마음을 항상 설레게 하고 많은 것을 추억 속에 남기게 한다.
그래서 나는 새로운 설렘과 추억을 맛보기 위하여 미지의 나라들을 항상 가보고 싶어 한다. 지금까지 돌아본 여러 나라의 유명 관광지들은 거의 다 기억 속에서 살아졌지만 유독 노르웨이의 항구도시 베르겐만큼은 몇 해가 지난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고 기억에 또렷이 남아 있는 것은 웬일일까?
마치 옛 애인을 잊으려야 잊을 수가 없어서 가금씩 그 여인을 생각하고 그리워하는 마음과 같은 것일까? 여하튼 베르겐은 나의 뇌리에서 살아지지 않고 문득문득 생각나게 하며 다시 한 번 방문하고 싶은 아름다운 곳으로 남아있다. 마치 백발이 다 된 솔베이지가 방랑벽이 있는 페르킨트를 기다리다가 드디어 만나게 되고 늙어서 죽어 가는 그를 무릎 위에 뉘어 놓고 사랑의 노래를 부른 것같이, 베르겐의 어느 여인이 나를 사무치게 기다리면서 돌아오라고 학수고대라도 하고 있는 것처럼 또, 나는 당연히 그녀를 만나기 위하여 달려가야만 하는 것처럼, 오늘도 베르겐이 나를 목메어 부르고 있는 것 같다.
몇 년 전, 그러니까 정확히 2007년 5월 26일에 우리부부를 포함한 일행 13명은 러시아의 뻬쩨르부르그를 관광 후 핀란드를 지나 호화 유람선인 실야라인 크루즈 배에서 일박, 스웨덴을 지나 노르웨이에 입국하였다. 우선 노르웨이 유명관광지를 돌아보기 위하여 버스투어를 시작하였다. 그리그(Edvard Grieg)의 피아노 콘서트와 아침기분(morgenstimmung)이라는 클래식 음악을 감명 깊게 들으면서 출발한 노르웨이의 2박 3일 간의 버스투어 일정 중엔 빙하 구경 및 아름다운 피오르드 및 6월인 대도 함박눈을 맞으면서 티롤스티겐 이라는 험준한 산악 길을 넘고 또, 산악 열차를 타고 폭포 옆에서 산다는 요정도 구경하면서 마지막 여정인 베르겐에 도착하였던 것이다. 항구도시 베르겐은 인구 약 21만 명, 노르웨이 제 2의 도시로 1070년에 올리브 퀴래 왕에 의해 도시가 형성되었다고 하며 12세기경에는 노르웨이의 수도였다고 한다. 공기가 맑고 자연이 아름다운 베르겐은 나를 매혹시키기에 충분하였다. 멕시코 만류의 영향으로 연평균 275일 비가 내리는 많은 강수량을 보이지만 우리가 방문한 6월 초의 날씨는 맑은 날이 계속되었다. 피요르드식 해안관광도 관광이려니와 그림 같은 집들, 눈부신 태양. 산악 트램(tram)을 타고 올라가면서 베르겐 시가지를 내려다보는 즐거움은 무어라 형용 할 수 없었다. 두 대의 객차가 케이블로 연결돼 베르겐 플뢰엔산을 오르내리는 강삭열차(funicular railway)는 1918년부터 운행을 시작했다고 하며 베르겐시가지 전경과 야경을 관광할 때는 이 관광열차를 타야만 절경을 구경 할 수 있다고 하였다.
열차를 타고 산 위에 오르니 확 트인 산 정상에는 오전 10시경인대도 눈부신 태양아래서 세계인들의 춤 잔치가 흥겹게 열리고 있었고 젊은 여성들이 신나게 추고 있는 헛슬 춤은 나를 매료시키기에 충분하였다. 정신없이 이 현란한 광경에 홀린 것처럼 넋을 잃고 서있는 우리 부부에게 웬 텁수룩하게 생긴 남자가 마누라를 낚아채듯 데리고 나가 춤을 신나게 추는 게 아닌가? 한편 괘씸하기도 하였지만 과히 기분은 썩 나쁘지 않은 묘한 감정. 한참동안 춤을 추던 마누라가 나에게 와서 같이 춤을 추잔다. 아마 생전 처음 보는 이국의 남자와 춤을 추다가 생각하니까 자기 남편에게 조금 미안했던가보다.
나도 여러 나라 사람들이 섞인 군중 속으로 마누라 손에 이끌려 신나게 춤을 정신없이 추었다. 춤에는 문외한인 내가 스텝은 맞는지 안 맞는지 모르겠으나, 춤이란 원래 기분에 따라 추는 가보다. 세계 뭇 선남선녀들과 어울려 춤을 정신없이 추다 힐끗 맞은편 쪽을 바라보니 우리 일행들이 나를 찾고 있는 가보다. 저 멀리서 손짓으로 부르고 있었다. 온 사방을 찾아 헤매다가 겨우 춤꾼들 속에서 우리를 찾았다는 일행들의 말에 여행이란 원래 사람들의 마음을 들뜨게 만들어 버린다고 얼버무렸지만 마음속으로는 미안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그날 오후 관광으로는 베르겐 도심에서 자동차로 약 30분 소요된다는 트롤드하우겐이라는 곳에 위치해 있는 그리그 생가를 방문하였다. 그 곳은 트롤의 언덕이라는 뜻으로 1885년 세워졌다고 하였다. 이곳에서 그리그는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22년 간 기거하며 수많은 명곡을 남겼다고 하였다. 또, 그리그 부부의 무덤이 그기에 있었고 가까이에서는 그리그 박물관도 관람 할 수 있었다.
그리그는 베르겐에서 태어난 노르웨이 국민주의 음악가로서 어릴 적부터 피아노를 좋아한 모친에게서 음악에 대한 기본 교육을 받고 같은 베르겐 출신의 유명한 피아니스트 올레 불의 인정을 받아 그의 권유로 1858년 라이프치히 음악원에 입학하여 4년 간 작곡과 피아노를 배웠다고 한다. 귀국 후 21세 때, 같은 노르웨이 출신의 젊은 작곡가였던 노르드라크와 깊은 우정을 맺고 그의 영향을 받아 그리그는 완전히 국민주의의 입장을 취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의 부인 니나도 가수로서 그리그의 반려자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였다고 하였다. 우리 일행은 기념관을 구경하고 난후 그리그가 음악창작에 열중하였다는 바닷가 조그마한 창작 실을 내려가 보았는데 안내양의 말로는 이곳에는 부인은 물로 어느 누구도 접근하지 못하게 하고 창작에만 골몰하였다는 조그마한 통나무집을 구경하고 난후, 바닷가 바위 위에 서서 나도 모르게 솔베이지 노래를 목청껏 부르니 일행전부가 나의 노래 실력에 한 번 더 놀라는 눈치였다. 바다 저 너머로는 그림 같은 집들이 원색의 지붕을 덮은 채 다닥다닥 붙어 있고 그 너머로 보이는 나지막한 산들, 바다 위를 날아다니는 갈매기들. 에메랄드 빛깔의 바다, 눈부신 태양. 베르겐은 그 빼어난 경관과 더불어 모든 것이 나의 마음을 빼앗기에 충분하였다. 아, 베르겐! 언제 다시 가 보려나.
2009.4.9일 대구 기독문학 제 4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