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보름 달맞이하러 친구 세 가족이 팔조령을 넘어 청도(淸道)를 향하였다. 어릴 때는 대보름이 되면 동네 형들과 함께 청솔가지와 짚 등을 쌓은 달집을 태우면서 달맞이를 한 아름다운 추억들을 간직하고 있지마는 실로 오래간만에 대보름 달맞이를 가는 것이다.
시골에서 자라면서 겪었던 아름다운 추억들이 고향에 대한 향수로 변하여 아직도 고스란히 마음속에 그리움으로 남아 있고 또, 나이가 들수록 옛 풍습들이며 가끔 명절이면 입어 보는 한복들에 미련이 남고 애착이 가게 되는 것은 나만이 느껴보는 감정일까? 아니면 내가 늙었다는 증거일까?
청도읍 근처 둔덕에 도착 한 것은 오후 5시경인데도 벌써 차들이 빼곡히 들어서있었다. 간신히 근처식당을 용케도 자리 잡고 보니 창문 너머 전망이 달맞이하기에도 그저 그만인 곳이었다. 좀 이른 대보름저녁 식사를 시작하였지만, 식사도중에 달집을 점화한다는 식당주인의 전갈을 듣고서 식사를 중지한 채 부리나케 달집 태우는 근처로 우르르 달려갔다. 청도읍 근처 시냇가 옆 빈터에서 활활 타오르고 있는 달집 주위에는 꽉 찬 사람들로 인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어서 포장마차들이 죽 늘어선 언덕위에 서서 구경 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사람들 틈사이로 얼굴만 간신히 내밀고 타오르는 불꽃을 바라볼 수 있었다.
달집까지의 거리가 제법 떨어져 있었지만 달집 타는 열기가 얼굴에 후끈하게 느껴졌다. 그때 갑자기 군중 속의 누군가가 “달이 뜬다!”라고 외치는 소리에 놀라 앞산을 쳐다보니 과연 앞산 봉우리 사이로 달이 뾰족이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산위로 떠오르는 대보름달, 활활 집어 삼킬 것 같은 화염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 길가에 늘어선 포장마차 주인들도, 합장하면서 손을 비벼대면서 행운을 기원하는 아낙네들도, 저마다 폰카를 꺼내들고서 이 환상적인 장면을 놓치지 않으려고 사진앵글을 맞추는 구경꾼들도, 남녀노소 모두가 이 순간만큼은 모두가 하나가 된 것 같다. 한 곳으로 고정된 시선, 시선들. 마치 한 폭의 풍속화 같다.
사진 찍기 경연장이라도 되는 것처럼 제각기 사진 찍기 바쁘다. 이런 아름다운 광경은 평생 처음이라며 감격하는 교수 친구 이상으로 나도 이 장엄하고도 엄숙한 분위기에 압도된 상태였다. 그런 와중에 바로 내 옆에서 들려오는 촌 어르신의 웅얼대는 소리에 가만히 귀 기울여 본다.
“워야둔둥…….”, “워야둔둥…….” 소리 밖에 들리지 않았으나 그 진지하고도 엄숙한 얼굴 표정을 보고 짐작컨대 달보고 무었을 기원하는 소리임에 틀림없는 것 같다. 저 노인장이 바라시는 것은 무엇일까? 건강, 풍년, 아니면 아들딸들의 성공, 또는 손자들의 안녕 등, 달 보고 빌어야 할 것은 많기도 하겠지! 어느 사이인가 나도 덩달아 달을 쳐다보며 간절히 내 소원들을 중얼대고 있었다. 달님이시여! 워야둔둥 내 소원을 들어 주십시오. 우리 가족들의 한해의 모든 액운일랑 다 물리치시고 좋은 일만 생기게 해 주십시오. 지금 벌어지고 있는 국내외의 모든 불행한 일들이 조속히 정상을 되찾도록 빕니다. 칼바람보다 더한 경제 한파를 이기고 대한민국이 하루 빨리 소생하도록, 그리고 배고프고 고달픈 실업자들이 더 이상 생기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걸핏하면 으르렁대는 남북이 화해하여서 하루 빨리 통일이 되도록 하여 주시고 더 이상 이웃나라 일본이 우리나라를 얕잡아 보지 않도록 우리에게 힘을 길러 주십시오. 불은 계속 활활 타오르고 달은 동산 위로 높이 떠오르고 나의 소원도 그 어느 때보다 간절하기만 하였다. 정월 대보름에 새해맞이로 달집을 태우는 것은 바깥에 새로 일어나는 불에다 안에 있던 묵은 불을 실어 보내는 행사라고 어느 누군가가 말하면서 사람들이 어두운 들녘에 모여서 달집에서 타오르는 뜨거운 불길이 하늘로 치솟아 멀리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노라면 가슴에 쌓인 불 또한 스르르 풀어져 멀리 사라진다고 하였다 달집을 뒤로하고 식당으로 되돌아오니 저 멀리서 불꽃놀이와 더불어 흥겨운 한가락이 들려오고 있었고 귀밝이술을 몇 잔 들이킨 우리들도 대보름 흥취에 모두가 빠져 들었다.
우리 모두가 어렸을 때의 추억으로 되돌아갔다. 달이 솟아오르는 것을 먼저 본 사람이 제일 먼저 불을 붙이고 달을 향해 절을 하는 것은 잡귀와 액운을 쫓기 위함이며 달집에 수숫대, 볏짚을 넣는 것은 풍요로운 생산을 기원하기 위함이란 둥……. 달집을 태우면서 설빔으로 만들어 놓은 유과나 콩 과자들을 나누어 먹으면서 동네 어른들은 북치고 꽹과리 등으로 풍물을 신나게 치고, 아낙네들은 소원을 적은 종이나 입고 있는 새 옷의 동정을 떼어 자신의 액운을 태워버리며 제각각 두 손 모아 달을 쳐다보면서 소원을 빌고, 불놀이가 끝난 후에는 각설이를 잘하는 동네 어르신의 뒤를 따라서 가가호호 방문하면서 지신을 밟고 악귀를 다 내쫓아주면 안주인은 맛있는 음식들을 가득가득 소쿠리에 담아 주면서 한 해의 행운을 빌고 그리하여 30여 호나 되는 동네 집들을 다 돌고 나서 늦은 밤이 되어서야 거둔 음식들을 나누어 먹은 후 끼리끼리 모여서 여러 놀이로 밤새움 하던 그 날들이 몹시도 그리워지는구나. 아, 옛날이여!
대구기독문학 제4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