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시골에서 자라면서 즐겼던 것 중 하나가 여울낚시였다. 성년이 된 이후 오늘날까지도 시간만 있으면 낚싯대를 메고서 개울로 향한다.
여울낚시를 하기 좋은 곳으로는, 물론 여울이 있어야하고, 그늘진 곳이어야 하며 바닥 돌들이 깨끗하고 미끄럽지 않으면 좋다.
주변 경관이 아름다우면 금상첨화다. 어느 무더웠던 여름날이었다,
우리 부부는 동해안을 끼고 울진 불영(佛影)계곡을 찾아갔다. 우리 산하가 아름답지 않은 곳이 어디 있으랴마는 특히, 불영계곡은 갈 때마다 그 곳의 경관에 매료되고 만다. 하늘을 가리는 울창한 나무들, 계곡의 여울, 틈새로 보이는 파란 하늘, 시원한 바람, 낚시장소로는 그저 그만이다. 신선이 놀 법한 이런 곳에는 어떤 물고기가 살고 있을까? 오늘은 어떤 놈이 나한테 걸려들까?
서둘러 낚싯줄을 풀어 계곡여울에 캐스팅 하였다. 금방 소식이 왔다. 손끝에 전해오는 물고기와의 교감은 낚시를 해 본 사람만이 느끼는 짜릿한 손맛이다. 낚싯대를 잽싸게 끌어당겼다. 은빛 물고기 한 마리가 팔딱거리며 딸려온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니 어딘가 낯설지 않은 물고기다. 어릴 적 고향 거창(居昌)에서 자주 잡혔던 놈과 많이도 닮았다. 이름 하여 가을피리라고 불렀지만 지금도 정확한 이름은 알 수가 없다. 큰 여울에서 살지 않고 계곡여울에서만 낚여왔던 너, 그리고 주로 초가을쯤이 되어서야 볼 수 있었던 너, 이게 몇 십 년만인고! 손안에서 부르르 떨고 있는 놈을, 미리 만들어 놓았던 물가 모래웅덩이 속으로 조심해서 넣는다.
너는 지금부터 나의 포로다, 살려거든 얌전히 나하고 놀아다오. 귀여운 포로를 찬찬히 들여다본다. 참 잘도 생긴 놈이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이보다 더 아름답고 예쁜 창조물을 만들 수 있었을까? 길이는 15㎝ 정도. 가늘고 긴 몸. 머리는 뾰족하고 넙죽대는 입은 주둥이의 끝에 있고 수염은 없다. 옆줄은 거의 직선이다.
머리의 등 쪽은 갈색이고 몸통의 등 쪽은 흑남색. 배 쪽으로 보라색, 주황색, 황색 및 흰색 세로띠가 보인다. 주둥이 끝에서 눈을 지나 흑색 띠가 있고 지느러미에도 흑색 띠가 보였다. 놈이 내 앞에서 주둥이를 개울 쪽으로 향한 채 아가미만 급하게 날름거린다. 반가움과 설렘으로 한동안 그를 바라본다.
같이 놀자는 내 마음을 요놈은 알기나 할까? 살짝 꼬리를 건드려본다. 미동도 않고 그는 아가미만 열심히 날름거릴 따름이다. 혹시 잡혀온지라 너무 무서워서 꼼짝도 안 하는 걸까? 얼마쯤이나 지났을까? 눈 깜짝 할 사이란 정말이지 이런 경우를 두고 말하는 것 같다. 그놈이 갑자기 개울 쪽으로 훌쩍 점프를 했다, 그리고 퐁당 여울물 속으로 종적을 감춰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잡혀오자 마자 이놈은 오로지 달아날 궁리만 한 것 같다. 탈출 할 기회만 엿본 것 같다. 여기서 개울까지의 거리가 얼만데 뛰어 넘어 도망을 가다니! 날 혼자 남겨두고 가버리다니! 고얀 놈 같으니라고! 한동안 멍하니 그 놈이 도망갔던 여울물을 쳐다본다. 또 물고기가 아가미를 넙죽대던 모래 웅덩이를 응시한다. 그리고 이내 옆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 아내를 쳐다본다. 이 광경을 죽 지켜보던 아내의 묘한 미소! 도망간 물고기의 마음을 알 수 없었던 것처럼 가끔은 여인의 마음도 헤아릴 수가 없을 때가 많다. 정말이지 황당한 기분이다. 주위에 삥 둘러 선 나무들을 훑어본다.
하늘을 바라본다. 갑자기 계곡의 시원한 바람 한 점이 휘익 하고 지나간다. 물 흐르는 소리 외에는 모두가 고요하다. 홀연히, 세상과 동떨어져 이방인 같이 혼자 덩그러이 놓여 져 있다는 적막감이 서서히 나의 온몸을 감싸기 시작한다. 한낮의 정적 가운데서 온 삼라만상이 숨죽이고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노려보면서 나를 향해 진군해오고 있는 것만 같다. 도망간 물고기에게는 모두가 갈채를 보내고 있는 대신에 나에게는 손가락질을 하면서 함성을 질러대는 것 같다.
"나쁜 인간 같으니라고! 자유! 남의 고귀한 자유를 함부로 짓밟으려드는 너는 과연 누구냐?" 하고 나를 힐책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자유를 되찾은 물고기마저 나를 향하여, "구속되고 억압된 너도 나처럼 일상에서 탈피하여 자유를 쟁취하고 해방의 기쁨을 만끽해 보라" 고 그놈이 나에게 가르쳐 주는 것만 같다. 잠시나마 대자연의 위대한 질서를 흩으려 놓았다는 부끄러움에 앞서, 이 계곡의 정기에 압도된 초라한 방문객의 마음 한 구석에서 우러나오는 자유에 대한 동경, 해방에로의 열망 같은 것이 서서히 샘솟기 시작하였다. 물고기야! 너는 내가 여태 알지 못했던 이 귀중한 것을 일깨워 주기 위하여 오늘 너의 목숨까지 담보하였구나! 고맙다. 잘 가거라. 자유를 찾은 너에게 영광 있어라. 자유의 메아리가 불영계곡 온 사방으로 울려 퍼지는 한여름 날 오후였다.
대구기독문학 제3집
